대한민국이 자유·평화를 누리고 있는 이유?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를 지원하는 명성기독병원

홍준익 기자

작성 2020.03.03 17:07 수정 2020.03.10 10:53
1999년 기념식 당시 강뉴부대 참전용사들의 모습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에티오피아 국민들을 위해 에티오피아 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설립된 명성기독병원(Myungsung Christian Medical Center.MCM)에서는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에게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병원의 한 한국인 관계자는 우리는 현재 명성기독병원을 통해 참전용사들께 무료로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명성의과대학(이 역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하고 있다.)에서 의사들을 양성해냄으로써 에티오피아 의료 사정을 나아지게 하려 하고 있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우리가 6·25 참전용사들께 입은 은혜를 갚기엔 충분하지 못하다." 라고 말했다.

대한민국과 에티오피아 사이에 어떠한 사연이 있는 걸까?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 침략 당시의 상황은?

대한민국은 1950년 당시 6·25전쟁에서 UN 연합군 16개국의 도움으로 북한의 적화통일을 저지할 수 있었다. 19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략하였을 때는 에티오피아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도와주거나 저지할만한 조직이 마땅히 없었다.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황제는 에티오피아 인접 국가인 수단에서 에티오피아 국민들을 불러내어 군사훈련을 통해 6년 뒤인 1941년에 조국에서 이탈리아를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이때 영국에서 무기와 교관을 보내 군사훈련에 도움을 주었지만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으로 참가하여 추축군인 이탈리아와 전쟁을 하고 있었기에 군사적인 목적에서 도와준 것이지, 침략 당하는 소국을 도와주려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베푼 도움은 아니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1892 - 1975)



UN설립과 6·25 전쟁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참전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얼마 안되어 UN 국제연합이 결성되었는데 에티오피아가 연합에 가입하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침략 당했을 때의 부조리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강력한 집단안보를 주장하며 침략당하는 약소국을 모두가 도와줘야한다고 주장을 펼쳤다. 이에 성문화된 집단안보책은 유엔헌장 42조로 "안전보장이사회는 제41조에 규정된 조치가 불충분할 경우에 국제평화를 위하여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파견할 수 있다." 이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약소국의 생존하는 집단안보법이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세라시에 황제는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게 10만달러를 한국에 후원했고 곧이어 미국도 유엔 헌장 42조에 따라 유엔군 파병에 참가하였다.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파병에 참가한 15국에서는 강제징집까지 이루어 졌으나, 약자의 설움을 아는 에티오피아에서는 황실근위병을 비롯한 100% 모두가 파병에 지원하였다. 에티오피아 군인들은 미7사단의 '강뉴부대'에 소속되어 5차례에 걸처 6,037명이 참전하였고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으나 6·25전쟁을 자신들의 전쟁이라 생각하며 용맹하게 싸웠고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는 둥, 이들은 미군의 해결사나 다름없었다. 그리스 종군기자인 키몬은 강뉴부대 용사들의 용맹함에 감동하여 '강뉴'라는 책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 어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조국으로 보내지 않고 '보화원'이라는 고아원에 후원하여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돌봐주었다.

 

한국전쟁 당시 강뉴부대원이 미 장군에게 훈장을 수여받는 모습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참전용사들의 몰락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을 기다렸던 건 조국의 몰락이었다. 한때 우리나라 국민 소득이 $67 일 때, 에티오피아 국민 소득은 $3,000 일정도로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를 자랑하던 국가였지만 7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으로 인해 풀이 모두 말라죽자 목축업이 주 경제활동이었던 에티오피아의 경제는 무너져 버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1974년 멩게스투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에티오피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북한의 김일성이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공산주의 기념탑을 세워줄 정도로 영향력을 펼치게 되었고 적화통일에 방해가 되었던 강뉴부대원들의 재산을 몰수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의 핍박을 받게 되었다. 어떤 참전용사들은 핍박을 견디다 못해 참전 사실을 숨기고 이름을 바꿔 숨어 살 정도로 공산치하 17년간 심한 핍박을 받아왔다. 이것이 에티오피아에 민주정부가 들어선지 2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이 참전용사들과 그 자손들이 아직까지 지독하게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이유이다.


*사진출저:에티오피아 6 25 참전용사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中



우리같은 약자들의 자유와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용맹히 싸워 찬사를 받아 마땅한 영웅들이 조국에선 핍박받고 가난과 주변인들의 원망에 시달린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평균 연령은 90세이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보내는 후원금 만으로 살아가고 있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명성기독병원에서 이들에게 무료 의료서비스를 베풀고 있듯이, 우리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돕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Inspired by:https://www.youtube.com/watch?v=ko1iulWmE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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